일곱인, 마지막 때를 향한 심판의 두루마리가 열리다(계 6:1-17) (2025)

일곱인, 마지막 때를 향한 심판의 두루마리가 열리다(계 6:1-17)

1. 오늘의 말씀 : 계 6:1-17

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2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4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5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6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7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14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예수께서 빌라도에 의해 살해당한 사람들과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죽은 사람들을 두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들이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13:3-5).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불의의 사고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나와 무관한 사건으로 보지 않게 하소서. 아무리 보아도 저들이 나보다 죄가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덤으로 사는 인생, 세상과 죄악으로 향하는 육신의 소욕에서 돌이켜 성령의 소욕을 따라 행하게 하소서. 나의 의지를 온전히 주관해 주소서. 오직 주님이 보는 것과 행하는 것의 주체가 되게 하소서. 내 영혼을 보혈로 정결케 하소서. 진리의 영으로 말씀을 조명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계시록 4-5장은 장차 될 일에 대한 서론이며, 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죽임당하신 어린양을 본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은 오른손에 일곱 인으로 봉인된 두루마리를 들고 계신다. 봉인된 두루마리는 죽임당한 어린양이 인을 뗀다.

일곱인의 두루마리는 심판의 환상이며, 마지막으로 하시는 행위라기보다 마지막 행위 전에 하시는 행위를 상징한다(마이클 고먼). 즉 심판을 통해 종말에 이르며, 마지막 목적지는 종말의 구원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하심이다.

일곱 번째 인은 일곱 나팔 재앙과 연결되며, 일곱 번째 나팔은 일곱 대접 재앙으로 이어진다. 곧 일곱인(6:1-8:1), 일곱 나팔(8:2-11:19), 일곱 대접(15-16장)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그 사이(12-14장)에 짐승(사탄)의 박해와 어린양(그리스도)의 구원이 삽입되어 있다.

죽임당한 어린양은 인봉한 두루마리를 하나씩 해제하여 여섯째까지 이른다. 처음 네 개의 두루마리 환상은 색깔이 다른 말(馬)과 말 탄 기사들의 모습이 묘사된다(6:1-8). 다섯 번째 두루마리 환상은 순교자들의 호소이고(6:9-11), 여섯 번째 환상에는 천동지변의 대환난에 대한 설명이다(6:12-17).

6:1-8은 첫 번째 인에서 네 번째 인의 개봉을 기술한다. 어린 양은 차례로 네 봉인을 개봉한다. 하나의 봉인이 열릴 때마다 보좌를 둘러싸고 있는 네 생물이 차례로 “열라”(오라)라고 말한다. 명령은 보좌에서 나오며 하나님의 소리를 대변한다. “열라”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어디서 나타나는지 언급하지 않은 말 탄 자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각기 다른 색깔의 말을 타고 나타나며 땅에서 활동한다.

네 개의 인과 네 생물과 네 명의 말 탄 자는 병렬되며 말에 대한 환상은 스가랴서에 근거한다(슥 1:8-15; 6:1-8). 말의 색은 각각 다르며 말 탄 자의 기능과 관련된다. 말 탄 자의 기능은 그의 상징으로 제시되며 상징물들은 활, 칼, 저울이다. 네 번째 말 탄 자는 아무런 상징물이 없으며 그 대신 죽음을 표상하는 하데스(스올)를 몸에 지니고 다닌다.

① 첫째 인의 개봉 - 흰 말을 탄 자 : 활을 가지고 있고 면류관이 주어져 있다. 그는 이기고 또 이긴다.

② 둘째 인의 개봉 - 붉은 말을 탄 자 : 검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이 서로 죽이도록 땅 위의 평화를 제거한다.

③ 셋째 인의 개봉 - 검은 말을 탄 자 : 저울을 가지고 있다. 밀 한 되에 한 데나리온, 보리 석 되에 한 데나리온,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

④ 넷째 인의 개봉 – 청황색 말을 탄 자 : 죽음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그 몸에 하데스를 지니고 있다.

첫째 말 탄 자는 ‘정복’을 상징한다. 흰색(승리), 활(무기), 면류관(승리자)은 전쟁에서 승리한 자를 나타낸다. 흰말 탄 자를 그리스도로 보는 견해는, 명령하는 자가 네 생물이라는 점에서 배제된다. 또한, 그를 적그리스도로 보는 견해 역시 보좌의 명령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배제된다. 흰말 탄 자는 모든 전쟁의 승리는 하늘에 있으며, 땅의 전쟁은 언제나 패배함을 보여준다. 지상의 전쟁에서 영원한 승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잠시 승리할 뿐 항상 패배로 끝난다.

둘째 말 탄 자는 첫째 말 탄 자와 연속된다. 붉은색은 피 흘림을 의미하며 전쟁으로 평화가 무너진 것을 상징한다. 무너진 평화는 인간의 힘으로 이룩한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이다. 만민에 대한 만민의 투쟁, 강자들에 의한 약자들의 살육, 강자들 상호 간의 투쟁이 나타난다. 인간이 만든 평화는 영존하지 못하며 그 안에는 투쟁, 살육, 피 흘림이 상존한다.

셋째 말 탄 자는 역시 둘째 말 탄 자와 연결된다. 검은색은 배고픔을 의미하며 전쟁의 결과 기근이 도래한다. 검은 말을 탄 자는 손에 저울을 가지고 말과 보리를 측량한다. 한 사람의 식량인 밀 한 되는 한 데나리온에, 한 식구의 식량인 보리 석 되도 한 데나리온에 거래된다. 이것은 평소 물가의 8~16배가 된다. 지속되는 전쟁으로 파종과 추수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일년생의 경작물인 보리와 밀의 가격이 폭등한다. 반면 다년생의 경작물인 감람유와 포도주는 가격이 그대로 유지된다. 터무니없는 물가 폭등이 기근을 불러온다.

넷째 말 탄 자는 죽음이라는 이름을 가졌고 하데스(스올)를 지니고 있다. 청황색은 죽은 자의 창백한 얼굴을 의미한다. 최후로 임하는 심판은 죽음이다. 처음 네 개의 인이 개봉되어 땅의 1/4이 해를 입는다. 이는 땅에 대한 심판이며, 이 심판은 검(전쟁)과 기근과 죽음과 땅의 짐승으로 이루어진다.

6:9-11, 어린양은 다섯 번째 인을 뗀다.

어린양이 다섯째 인을 뗄 때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인해 죽임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서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을 보았다(9절).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10절). 이 말은, 땅에 거하는 자들에 의해 흘린 우리의 피를 어느 때 심판하여 벌하겠느냐는 호소이다.

그러자 그들에게 흰 두루마리가 주어지며 그들은 그들과 같은 동료 종들과 그들의 형제 중에서 그들처럼 죽임을 당할 사람들의 수가 차기까지 잠시동안 휴식을 취하라는 말씀을 들었다(11절).

구약에서 희생 제물(짐승)의 피는 제단 아래에 뿌려졌다. 그런데 하늘 제단 아래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인해 피 흘려 죽임당한 이들의 영혼이 있다. 보좌에 있는 죽임당한 어린양과 하늘 제단 아래에 있는 죽임당한 영혼이 조화를 이룬다. ‘영혼‘은 육적인 죽음을 넘어서는 인격의 연속성을 반영하며, 행위의 주체로 파악한다.

하늘 제단 아래에서 복수를 탄원하는 죽임당한 영혼이 누구인가? 이들은 아직 순교 당하지 않은 동료 종들과 그들의 형제와 다른 이들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인해 피 흘려 죽임당한 것으로 보아 그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이다. 첫 번째 선지자 아벨은 제물을 제단에 드린 것으로 피 흘려 죽었고(창 4:8), 사가랴는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피 흘려 죽었다(대하 24:21). 이는 순교자들(의인들)이 거하는 장소를 제단 아래로 정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눅 11:50-51).

또한, 하늘 제단 아래에 있는 순교자들은 계시록 당대에 먼저 순교한 이들로 보기도 한다. 이들은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사탄에 속하여 황제숭배를 하는 이들에 의해 순교한 이들이다. 이런 자들을 심판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보응의 성격을 띠고 있다.

‘땅에 거하는 자들’(땅에 사는 자들)은 계시록에서 자주 반복되는 표현이다(3:10; 6:10; 8:13; 11:10; 13:8, 12, 14; 14:6; 17:2, 8). 이들은 ‘하늘에 사는 성도들’(계 13:6)과 대립하며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불신자를 가리킨다(15절; “땅의 임금들...”).

‘대주재’(10절)는 믿는 자뿐 아니라 믿지 않는 자를 포함하여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대주재이신 하나님이 그들에게 정결함과 승리를 상징하는 흰 두루마리를 주시고 그들과 같이 죽임당하는 이들이 수가 차기까지 잠시동안 쉬라고 하신다. 표면적으로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할 형제들이 더 남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순교할 형제들이 정해져 있어서 그 정확한 숫자를 채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맥으로 보아 이 말씀은 복수를 구하는 그들의 응답이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고 지연된다는 뜻이다. 곧 우주적인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들이 결정적 역할을 하며 그들에게 고난은 필연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곧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복음이 증거되어야 하고, 복음 전하는 자는 순교에 이르는 고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10장, 두 증인).

6:12-17, 어린양은 여섯째 인을 뗀다.

요한은 어린양이 여섯째 인을 뗄 때 큰 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12절). 해는 검은 머리털로 짠 직물처럼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같이 되고, 별들은 무화과나무가 거센 바람에 흔들려 선 열매들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13절).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듯이 사라져 버리고 모든 산과 섬은 제 자리에서 떠나가 버렸다(14절).

종말에 임하는 심판 앞에서 ‘땅의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피하여 숨는다. 땅의 임금들, 귀족들, 장군들, 부자들, 힘센 자들은 물론 모든 노예와 자유인도 동굴과 산에 있는 바위틈에 숨는다(15절). 그러면서 산과 바위를 향하여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라고 말한다(16절). 그것은 그들이 당할 큰 진노의 날이 왔기 때문이다. 누가 이것을 견디어 낼 수 있겠는가?(17절).

땅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불신자들이다. 그들은 영적으로 사탄에게 속하여 하나님을 대적한다. 그들은 땅에서 왕, 귀족, 장군, 부자, 강한 자로서 소위 기득권을 가진 부류들이다. 이들은 자기들이 가진 부와 권력으로 인해 하나님을 믿기도 어렵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한다. 이들은 종말의 날, 하나님의 얼굴과 어린양의 진노가 너무 두려워서 차라리 산과 바위가 그들에게 떨어지기를 바란다. 모든 노예와 자유인 역시 그들이 땅에 사는 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상기한 대로 계시록이 보여주는 심판의 환상은 일곱 장면으로 이루어진 여러 그룹으로 묘사된다. 이 같은 심판의 환상은 마지막 이야기가 아니다. 일곱 대접 심판 이후 그리스도께서 많은 관을 쓰시고 피로 물든 옷을 입은 채 하나님의 말씀이요 왕의 왕이시며 주의 주로 흰 말을 타고 나타나사, 그의 입에 있는 칼로 전쟁을 벌이시기 때문이다(19:11-21). 그러나 이것도 최후의 심판이 아니다. 마지막 심판 때 ‘마귀, 짐승, 거짓 선지자’와 회개하지 않은 자, 죽음. 음부가 모두 최후의 운명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일곱인이 해제되고 보여주는 심판의 환상은 정복, 전쟁에 의한 평화의 무너짐, 기근, 죽음이다.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인해 순교 당한 이들의 탄원이 들린다. 땅에서는 천동지변이 일어나 땅에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견디지 못한다. 마지막 심판이 가까울수록 세상은 심판의 징조로 황폐해지고, 그날에 땅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가공스러운 진노를 견디지 못하고 차라리 바위가 그들 위에 떨어지기를 바란다.

지금은 마지막 날이 가까운 말세이다. 곳곳에 전쟁과 기근이 계속되고, 지진이 일어나고 있다. 심판의 증상은 우주적 성격을 가지며 도처에 정복 전쟁, 평화의 제거, 기근, 죽음이 현존한다. 따라서 세상은 당장 보기에 화려하고 번성해도 하늘의 관점에서는 심판이 집행되고 있다. 땅에 사는 불신자는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한다. 그러면서 세상은 최후 심판을 향하여 가고 있다

그러나 최후 심판의 날,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자를 심판에서 건지신다. 그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하나님의 진노에서 건짐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구원도, 마지막 날의 구원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달려 있다. 이 점에서 최종적 구원은 인간의 의로운 행위에 달려 있는 칭의의 유보 사상은 불식된다.

“또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그 아들 곧 장차 내릴 진노에서 우리를 건져 주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오시기를 기다리는지를, 그들은 말합니다”(살전 1:10).

4. 나의 묵상

초대교회 이후 일곱인은 해제되었고 심판의 환상은 지속되고 있다.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마지막 심판이 임하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 세계는 전쟁과 기근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실제 무고한 많은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 사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최근 대학교수들이 시국 선언문을 냈는데,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로 시작한다. 이것은 교수들이 학생들을 대하면서 실제로 느끼고 겪었던 이야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에 의하면 지금 한국 사회는 폐허 같고, 그 속을 살아가는 마음 역시 폐허 같으며, 문제는 더 나아질 것 같지도 않고, 기대조차 없다는 데 공감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권력자나 지도자 그룹이 바뀐다고 폐허로 가는 사회가 회복될까? 수도 없이 경험했지만, 그것은 신기루같은 망상이다.

폐허 속에서 희망을 보여주어야 할 교회는 과연 어떤 모습인가? 또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주님은 이미 세상을 폐허로 보시고 우리를 ‘소금’이라고 하셨다(마 5:13). 만물은 종말에 새롭게 되지만, 지금은 탄식하는 만물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란다(롬 8:19).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1,000일을 맞이하면서 각각 4만 명과 70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스라엘 – 하마스 전쟁은 가자 지구 사망자만 4만 명에 달한다. 양측의 전쟁은 헤즈볼라와 확전되어 레바논에서만 벌써 4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천하보다 귀한 목숨이 파리목숨처럼 된다.

유진 피터슨은 전쟁을 상징하는 붉은 말의 환상을 주석하면서 아무리 좋은 명분으로 전쟁을 하여도 그것은 악이라고 규정하였다. “사람들은 전쟁을 이내 정당하고 애국적인 행위 혹은 이성에 맞는 행위로 찬미한다. 하지만 전쟁은 피를 흘리는 잔인한 붉은 말로서 삶을 비참하고 무서운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우리로 하여금 전쟁이 목표 성취를 위한 올바른 수단이라고 인식하게 하기 위해 전쟁을 미화하는 것은 시대를 뛰어넘는 계략이다. 그러나 전쟁은 악이다. 그리스도는 전쟁을 반대하신다. 그리스도는 결코 붉은 말 위에 앉지 않으신다”(Reversed Thunder, 번역본 _ “묵시 : 현실을 새롭게 하는 영성”).

날마다 들려오는 전쟁의 참혹한 소식에 한순간 무력감에 빠진다. 그렇다고 불구경하듯 무감각할 수도 없다. 다만 개인적 종말이든 우주적 종말이든 언제 올지 모르는 그날에 깨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날에 그리스도가 주실 은혜를 사모하며 주와 복음을 위해 나의 몸과 시간을 드린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일곱인의 두루마리가 열리며 마지막 때를 향한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정복과 전쟁과 기근과 죽음이 세상에 만연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죄악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형벌입니다. 그 와중에 제단 아래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증거로 인해 죽임당한 자들이 신원합니다. 심판하여 피를 갚아주기를 호소합니다. 마침내 종말의 심판이 임합니다. 그날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아무도 당할 자가 없습니다. 땅에 있는 자들은 차라리 바위가 자기들 위에 떨어지기를 구합니다.

아버지여... 지금 세상은 마지막 때를 향해 달려갑니다. 지구촌은 전쟁통입니다. 수십만의 젊은이들과 무고한 자들이 죽어갑니다. 저들은 전쟁을 정당화하지만, 그것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악입니다. 그리스도는 결코 붉은 말을 타지 아니하십니다. 그리스도는 검이 아니라 평화를 가져오십니다. 주여, 전쟁의 광증에 사로잡힌 자들을 심판하소서. 순전한 자들의 탄원과 기도를 들으소서. 희생자를 막아주시고 황폐한 자리에 있는 이들을 돌보아주소서.

아버지... 심판을 향해 가는 세상에서 참으로 무력합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식자층은 이 사회를 폐허로 부릅니다.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시고 썩어가는 땅의 소금으로 부르셨습니다. 나로 인해 세상이 더 더럽혀지지 않게 하소서. 매순간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소서. 성결한 삶을 사모하게 하소서. 고통당하는 자와 벗이 되며 그들을 위해 중보하게 하소서. 심판의 끝자락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대망합니다. 그가 가져올 은혜를 사모하면서 깨어 있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일곱인, 마지막 때를 향한 심판의 두루마리가 열리다(계 6:1-17) (2025)
Top Articles
Latest Posts
Recommended Articles
Article information

Author: Jerrold Considine

Last Updated:

Views: 6552

Rating: 4.8 / 5 (78 voted)

Reviews: 93% of readers found this page helpful

Author information

Name: Jerrold Considine

Birthday: 1993-11-03

Address: Suite 447 3463 Marybelle Circles, New Marlin, AL 20765

Phone: +5816749283868

Job: Sales Executive

Hobby: Air sports, Sand art, Electronics, LARPing, Baseball, Book restoration, Puzzles

Introduction: My name is Jerrold Considine, I am a combative, cheerful, encouraging, happy, enthusiastic, funny, kind person who loves writing and wants to share my knowledge and understanding with you.